#1 로위성계:아이론행성:하비시 - 부스토 제본실
"젠장, 이건 모두 J 때문이야!"
오늘도 열렬한 H 의 맹신자이며 hookhead 집단의 일원을 늘 자랑하는 헤이드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버릇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다. 오늘은 무슨 심사가 더 틀렸는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높다.
"아냐, 그건 모두 H 때문이야!"
당연하다는듯이, 어제와 똑같이 J 사상의 평론가를 자처하는 쥬드는 항변하듯 말하지만서도, 헤이드를 쳐다보지도 않고 하던 제본작업을 하면서 말을 한다.
고개를 들어 둘 사이를 바라봤지만, 창문을 통해 비쳐드는 나른한 오후 햇빛만이 있을 뿐, 긴장이 주는 자장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인사와도 같은 말을 서로 주고 받았을 뿐이다.
쥬드는 부서질듯한 종이를 햇빛이 닿지 않는 복사실에서 조심스레 복사를 하고 있고, 헤이드는 햇살을 머리에 받아가며 작업장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햇볕에 중요한 서책이 상하는지도 모르고 답답한 작업실에 채광창을 내자고 했던 나의 미안한 마음과, 그럼에도 창을 내주고 복사실 구조를 바꾸어준 고마운 마음이 공간에 뿌옇게 담겨있을 뿐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종이로 만든 책의 제본일을 하는 쥬드는 헤이드의 형이다. 헤이드는 정부에서 요청하는 일 외에는 거의 없는 제본일을 못마땅해 하지만, 어릴적부터 부스토 집안의 가업으로 이어오던 일이라 늘 투덜대며 일하는 동생이다. 오늘도 오전일을 하지않고 집단모임에 갔다가 오후에나 들어오는 길이나 보다.
그래도, 이 행성내에서 한명밖에 없는 내 친구 쥬드의 딱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면서 하나밖에 없는 조수이다. 나도 작업은 하지만, 헤이드보다도 못한 초보일 뿐이다. 쥬드와 헤이드는 사상만 좀 다를 뿐 사이좋은 형제다. 오후에나 온 동생을 별로 나무라지도 않으면서 헤이드는 자기일을 계속한다. 헤이드는 형의 항변에 별 대꾸도 없이 옷을 작업복으로 주섬주섬 갈아입더니 복사된 후 습도 처리된 새 종이를 제본사로 바느질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갓 구어져 태어난 새 종이들이 바삭거리는 소리와 인쇄된 잉크의 미끈한 향기만이 오후를 채운다.
<++(
'paper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단편5 (0) | 2020.12.19 |
---|---|
꿈단편4 (0) | 2020.09.27 |
[JH 16세] #4 로위성계:아이론행성:하비시외각 - J & Load 펍 옥상 (0) | 2014.07.13 |
[JH 16세] #3 로위성계:아이론행성:하비시 - 거리 (0) | 2014.07.13 |
[JH 16세] #2 로위성계:아이론행성:하비시 - 부스토 서고실 (0) | 2013.08.26 |
댓글